달라스 성 김대건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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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식 대신 가난한 이 돕는 삶 선택
베네딕도회 수도자 가난한 삶 보며 사업가 꿈 접어
선행 실천하기위해 출세 보장된 학업적 성취 포기


22P2661_200908230701.jpg- 성 필립보 네리를 표현한 성화 (스테파노 볼로니니 작). 어린 나이에 출가해 사업가의 꿈을 키웠던 성인은 베네딕도 수도자들의 가난한 삶을 접하며 평생동안 보장된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로마에서의 기도생활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택했다.
사료마다 전하는 내용이 달라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필립보 네리를 양자로 삼고 사업체를 물려주겠다고 한 인물을 두고 어떤 자료에서는 큰아버지로, 또 다른 자료에서는 먼 친척뻘되는 아저씨로 소개하고 있다. 로마 교황청 홈페이지를 비롯해 필립보 네리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뒤져 봤지만 역시 정확한 언급이 없었다. ‘로물로’라는 이름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할 수 없이 여기서는 그냥 ‘로물로 아저씨’로 부르기로 한다.

로물로 아저씨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이 바라보이는 마을에 살고 있었다.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은 수도생활의 아버지 베네딕토 성인이 교회 최초로 수도원 제도를 정착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몬테카시노는 오래전부터 신앙의 땅이었다.

청빈의 상징인 수도원의 원조가 자리 잡고 있는 땅에, 필립보 네리가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재벌 2세로 살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실제로 로물로 아저씨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부자였다. 엄청난 규모의 집, 서민들은 평생 동안 구경도 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가구들, 넓고 비옥한 토지, 짐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말과 두 마리의 승마용 말…. 로물로 아저씨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필립보 네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넌 앞으로 내 아들이다. 이 모든 것이 네 것이다.”

그런데 필립보 네리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돈보다도 소중한 그 무엇이 있을 듯했다. 그래서 필립보 네리는 마을 인근에 있는 몬테카시노 수도원(베네딕토회)을 자주 방문했다. 자연히 베네딕토회 수사들과의 교류가 많아졌다. 여기서 그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가난의 삶(특히 에우세비오 데볼리 수사 신부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도 시작됐다. 이후 필립보 네리는 성경의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묵상했다고 한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필립보 네리는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긴다. 평생 동안 보장된 부유한 삶을 포기한 것이다. “아저씨, 저 떠나겠어요.” 로물로 아저씨의 실망은 컸다. 그리고 적극 만류했다.

하지만 필립보 네리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로마로 훌쩍 떠났다. 필립보 네리는 로마에서 영성적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진정한 영성적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겠다고 결심했다.

로마에서의 삶은 한동안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로물로 아저씨가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준 여비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게다가 필립보 네리는 귀족 가문인데다 피렌체 출신이었다. 당시 로마의 정치 경제는 피렌체 출신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다. 교황도 피렌체 출신이었다. 메디치 가문 등 당시 로마 권력의 상수 관계까지 언급하면 말이 길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아무튼 피렌체 출신의 필립보 네리는 로마에서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실제로 몇몇 지인들의 도움으로 생계에 대한 별다른 걱정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가난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은인들의 자녀들을 가르쳤지만 숙식제공 이 외의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다. 하루에 먹는 음식도 빵 한 덩이와 올리브 한 종지, 물 한 사발뿐이었다고 한다. 달리 더 먹는 것이 있다면 치즈 몇 조각이 전부였다.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사는 것과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필립보 네리는 원했다면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것이다. 그 목적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었다. 그는 많은 밤들을 새우며 기도에 매달렸고, 낮 시간에도 8시간 이상씩 로마 시내 성당을 순례하며 기도를 바쳤다. 기도에 매달리는 그에 대한 소문이 고향에 전해지자 가족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한 행적이 내게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아요. 소년 시절부터 필립보는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이처럼 하루 10시간 이상의 기도 생활 속에서도 그는 학문적으로 상당한 경지에 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로마 사피엔자 대학의 최고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아우구스티노 회원들과 함께 신학 공부에도 열중했다. 당시 유명했던 철학자 알렉산드로 부르지오는 그런 필립보 네리를 두고 “재능이 참으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불렀다. 모두들 필립보 네리가 “뛰어난 신학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필립보 네리는 여기서 또 한 번 중대한 결심을 한다. 공부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쉽지 않은 결단이다. 오늘날에 비유하면, 결정된 박사학위 논문을 찢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주위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그를 만류했다.

“넌 조금만 공부를 더하면 훌륭한 신학자 혹은 철학자가 될 수 있어.”

하지만 필립보 네리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여기서 당장 선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다리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필립보 네리는 돈이 많을 때는 돈을 버렸고, 학문적 성취가 눈앞에 보일 때는 그마저 포기했다.

돈과 지식에 대한 욕심을 모두 떨쳐 버린 필립보 네리가 선택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이었다. 반드시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소외된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립보 네리는 자신이 공부하던 책을 모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부유했던 시절(1막), 공부와 기도에 매달렸던 시절(2막)에 이어 필립보 네리의 인생 3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광호 기자
( woo@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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