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성 김대건 한인성당

대희년

1. 희년의 뜻과 유래

희년 정신의 뿌리는 구약의 출애굽 사건이다. 희년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 백성으로 부르시고,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기념에서 비롯됐다.

이스라엘 백성은 7년마다 안식년을 지냈다. 그리고 안식년이 일곱 번 돌아오게 되는 50년째에는 '희년'이라고 이름 붙인 큰 축제를 성대하게 지냈다. 희년에는 안식년처럼 밭에 씨를 뿌리거나 포도원을 가꾸어 소출을 거둘 수 없다. 그뿐 아니라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풀려나고 그 이전 50년 동안 가난 등의 이유 때문에 팔린 땅이 제 주인에게 다시 돌아간다.

그래서 희년은 모든 사람이 해방되는 해. 모든 것이 제자리로 회복되는 해이다. 즉 자유를 되찾아 주는 '해방'과 원래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회복'이 희년의 정신이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에서 비롯된 희년 정신은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를 거쳐 예수께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고 그 희년 정신은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 안에서 실현 되었고, 지금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희년의 메시지 전체가 수렴돼 있다. 신약에서 '해방'과 '자유'는 '풀어줌'을 뜻하는 희랍어 '아페시스'라는 한 낱말로 표현되고 있고 이 '풀어줌'은 신약 성서에서 '빚의 탕감'과 '죄의 용서' 모두를 가르킨다.

인류는 바야흐로 2천년 대희년을 맞게 된다. 희년의 참 뜻과 모든 윤리적 요구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실천해야 할 도리이다. 희년의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감사하고 회개하며 나눔과 섬김으로써 이루어질 때 실현이 가능하다.

2. 가톨릭 교회의 희년 역사

구약의 희년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었지만, 희년이 교회 안에서 처음으로 공식 선포된 것은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지 1천년이 훨씬 지난 1300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를 이루고 있던 유럽 사회는 전쟁과 전염병을 비롯해 갖가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같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자 좀더 성스럽고 거룩한 생활을 희구하는 열망이 대중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열심한 신자들은 성도 로마로 순례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로마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교황의 축복을 받아 영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 였다.

그래서 1299년 성탄 때에는 로마를 찾은 순례객들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엄청난 순례객들이 로마를 찾아오자 당시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그들이 로마를 순례하는 까닭을 알아본 후 그 신앙에 감복하여 칙서를 발표, 1300년을 모든 죄를 사면하는 성년으로 선포하고, 앞으로도 매 1백년마다 성년을 지내도록 했다. 이것이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첫 희년이었다.

이 희년 규정에 따르면, 참회를 하고 고해 성사를 본 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대성당들을 방문, 기도를 하면 지은 모든 죄를 용서 받는 전대사를 받았다.

그러나 1백년마다 희년을 지내기로 한 규정은 얼마 가지 않아 변경됐다.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진 후(1305-1377), 두 번째 희년을 1400년이 아닌 1350년에 지내자는 많은 요청이 들어왔고,1342년 교황 클레멘스 6세는 매 50년마다 희년을 지내기로 했다. 이에 따라 1350년에 두 번째 희년을 지냈다. 이어 1389년 교황 우르바노 6세는 50년마다 지내기로 된 성년을 예수의 나이에 따라 33년마다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우르바노 6세가 그해에 서거하자, 뒤를 이은 교황 보니파시오 9세는 1390년을 성년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순례객의 수가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교황은 1400년을 2차 성년으로 선포 했다. 이것이 네 번째 희년이었다.

가톨릭 교회의 다섯번째 희년은 1425년에 지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이 해를 성년으로 선포하면서 두가지 행사를 추가했다. 하나는 희년 기념 메달을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에 성년문을 지정해 문을 여는 예식을 한 것이다. 교황 니콜라스 5세는 1450년을 성년으로 선포했고, 바오로 2세는 1470년 칙서를 발표, 희년을 매 25년 마다 지내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교황 식스토 4세는 1475년을 성년으로 선포 했다. 7번째 성년이었다.

1500년 성년 때에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포함해 4개의 대성당 성년문을 동시에 열도록 했고, 자신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년문을 열었다. 교황 클레멘스 7세는 1524년 12월24일 9번째의 성년을 선포했고, 이어 바오로3세는 1550년을 성년으로 선포했지만 1549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 후임인 율리오 3세가 성년을 시작했다. 그레고리오 3세 때인 1575년 성년에는 유럽 전역에서 30만명이 로마로 오는 등 성년 순례객 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어 1600년 (클레멘스 8세), 1625년(우르바노 8세), 1650년(인노센트 10세), 1675년 (클레 멘스 10세)이 각각 성년으로 선포 됐다. 교황 인노센트 12세는 1700년 성년 때에 순례객들을 위한 쉼터인 '성 미카엘 아 리파 호스피스'를 세웠고, 1725년의 희년(베네딕도 13세)에는 이런 쉼터들이 여러 곳으로 늘어났다. 베네딕도 14세가 성년으로 선포한 1750년에의 유명한 인물로는 로마의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 안에 14처를 세운 '십자가의 길'의 사도 성 베르나르도 다 포르토 마우리지오를 꼽을 수 있다. 이어 1775년도 성년 (베네딕도 14세)으로 지냈다.

교황 비오 7세는 1800년을 성년으로 선포하려고 했으나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레오 12세는 1825년을 성년으로 선포 했고, 50만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로마를 찾았다. 그 다음 성년은 1850년에 지내야 했지만, 당시 로마 공화국의 상황이 불안한 데다가 교황 비오 9세가 일시적으로 유배 중이어서 성년으로 선포되지 못했다. 1875년에는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왕의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고 교황 비오 9세 또한 바티칸에 유폐당한 처지였지만 교황은 성년으로 지냈다. 하지만 성년문을 여는 예식은 거행하지 못했다.

20세기의 문을 연 1900년은 가톨릭 교회가 지낸 22번째 희년이었다. 교황 레오 13세는 성 요한 밥티스타 드 라살레와 성 리타 다 카시아 등 2명의 성인과 6명의 복자에 대한 시복시성식을 거행함으로써 성년을 성대하게 지냈다. 이어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을 성년으로 선포하면서 신자들에게 선교 활동에 특별한 관심을 쏟도록 요청했다. 또 사면을 얻기 위해서는 교황의 뜻에 따라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을 성년으로 선포하면서 영혼들의 성화를 위한 회개와 기도, 오류에 빠진 이들과 비신앙인들을 위한 기도, 사회 정의의 촉진과 가난하고 곤궁에 처한 이들에 대한 지원 들의 실천 지침을 제시했다. 특히 이 해에 교황은 성모승천 교리를 가톨릭 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언 하기도 했다.

1975년은 1300년부터 시작된 교회의 희년 역사에서 25번째의 정규 희년 이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 해를 성년으로 선포하면서 '화해와 쇄신'을 주제로 설정했다.

이 같은 정규 희년 외에도 교회는 특별한 때에 희년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의 특별 희년으로는 1983년 성모 승천 교리 반포 33주년을 맞아 선포한 성모 성년과 1987년의 성모 성년을 들 수 있다. 특히 1987년의 성모 성년은 2천년 대희년을 더욱 뜻 있게 준비하기 위한 희년이었다.

3. '성년문' 어떻게 여나

1425년 성년 때에 교황 요한 마르티노 5세는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에 성년문을 지정해 성년을 시작 하면서 성년문을 여는 예식을 갖도록 했다. 이어 교황 알렉산더 6세는 1500년 성년 때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포함해 모두 4개의 대성당에 성년문을 지정하고 자신이 직접 성 베드로 대성당 문을 여는 예식을 집전했다.

이후 역대 교황들은 성년을 선포할 때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년문을 직접 여는 예식을 거행하곤 했다. 이 예식은 교황이 청동으로 된 성년문을 은으로 만든 망치로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오는 1999년12월 24일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년문을 두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예식을 집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주 입구 오른쪽에 있는 성년문은 보통 때는 벽돌로 봉해져 있다. 이것은 죄로 인해 단절된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일깨워 준다. 성년을 선포하면서 교황은 이 문을 엶으로써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인간이 새롭게 화해하는 은총의 해, 기쁨의 해를 선언하는 것이다.

성년문은 어떻게 여는가. 교황은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과 참회자들을 대동하고 성년문으로 와서, 은망치로 문을 두드리며 "나를 위해 정의의 문들을 열어라"고 외친다. 오늘날에는 성년문을 가렸던 벽돌들을 미리 제거해 둔다. 교황 바오로 6세가 1975년 성년 때 성년문을 두드렸을 때에 벽돌 조각이 떨어져 큰 위험을 당할 뻔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문설주에 입맞춤을 한 후 성년문을 통과해 성당으로 들어간다. 성년이 끝날 때 교황은 제일 마지막으로 다시 성년문을 통과하고 이어 벽돌로 성년문이 다시 봉해진다.

4. 2천년을 왜 대희년으로 지내는가

교회가 2천년을 대희년으로 지내는 것은 일차적으로 2천년이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천 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구원의 결정적인 시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 됐기에 그분의 탄생 2천 주년을 경축하는 것은 세속의 눈으로 볼 때에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교회가 2천년을 대희년으로 경축하는 것은 이 같은 세속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시간과 역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지난 천년기의 역사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천년기를 온전히 바쳐 드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예수 부활 대축일의 부활 성야 예식 때 사제는 부활초에 십자가 표시 등을 하면서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시작이요 마침이며,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시대도 세기도 주님의 것이오니...'하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시간과 역사의 주님'이시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백이다.

지난 천년대가 끝나고 새로운 천년대를 시작하는 2천년의 뜻 깊은 시기를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실현하신 희년으로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천년 대희년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구원의 선물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해이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신들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구원의 기쁨을 펼쳐보이는 해다. 나아가 2천년은 전인류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구원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2천년을 대희년으로 지내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그리스도교의 제2천년기가 그 끝에 이르면서, 교회는 자기 자녀들의 죄과를 더욱 철저하게 의식하여야 할 것" 이라고 회개를 촉구하면서 대희년을 맞을 준비를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5. 교황은 2000년을 왜 대희년으로 선포했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994년에 발표한 교서 '제3천년기'에서 예수 그리스도 탄생 후 2천 주년을 기념 하는 서기 2천년을 대희년으로 선포 하면서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할 것을 전 세계 모든 교회에 권고 했다. 교황이 2천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한 것은 지나온 한 천년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2천년을 맞아 우주 만물의 시작이요 중심이며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하느님 백성(교회)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희년의 정신을 다시 활짝 펼치기 위해서 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2천년 역사 속에서 교회가 희년을 선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희년'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교회는 그동안 희년보다는 '성년'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성년은 교회법적인 용어라면 희년은 성서적인 용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14세기 이후로 교회는 1백년이나 50년 또는 25년 주기로 성년을 선포해 이 해에 교회가 정한 방식대로 기도와 참회를 하는 신자들에게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사해주는 대사를 베풀었다. 교회는 2천년을 역시 대성년으로 지내면서 신자들에게 성년대사를 베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교황이 교서에서 성년이 아닌 희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성년은 가톨릭 교회에만 해당하는 용어인 반면에 희년은 가톨릭 뿐만 아니라 갈라져 나가 있는 모든 그리스도 교회들에서 똑같이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 후 2천년은 단지 가톨릭 교회에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그리스도 교회들에게도 대희년으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그리스도 탄생 후 2천년이 단지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전 인류를 위해서도 특별한 대희년이 된다고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시간을 계산하는 달력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자체가 인류 역사 안에서 나자렛 예수의 탄생이 지니는 의미가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6. 대희년을 맞는 우리 각자의 마음 자세

교회는 우선적으로 깊은 '내적성찰'을 하도록 가르친다. 이러한 내적 성찰을 통해 죄의 용서와 회개의 기쁨을 얻을 수 있고 하느님과 자신 그리고 이웃과 모든 창조계와의 화해에 도달할 수 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관한 한국 주교단 사목 교서 <대희년을 바라보며>에 언급된 내용을 여기에 인용한다.

"2000년을 앞두고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의 정신 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소금의 짠맛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새로운 대림시기' (제3천년기 23항)를 사는 자세로 그리스도를 우리 각자의 공동체의 삶에 깊이 받아 모셔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 맞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 3,2).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으로 전도를 시작하십니다. '때가 되어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께서도 이렇게 밝히십니다. '모든 희년의 기쁨은 무엇 보다도 죄의 용서에 기초한 기쁨, 회개의 기쁨입니다' (제3천년기 32항)... 회개는 글자 그대로, 삶의 태도를 고치고,관성에 젖어 별 생각 없이 걸어가던 걸음걸이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 합니다. 남의 잘못을 비판하고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세상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할 때에 세상이 바뀝니다." (4-2,3,4항)"